Ich/höre

190112

thomdom 2019. 1. 12. 08:27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오늘, '베일리 어게인'을 봤다. 아니, 상영했다.


영화 포스터를 봤는데 네 마리의 강아지가 있었고 예고편을 보아하니


강하지 한 마리가 네 번 몸을 바꿔서 사는 것 같았다.


후임이 이번 영화가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봐서,


"윤회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불교 영화"라고 


장난스럽게 얘기해줬다.




사실, 영화 자체가 호화찬란하지는 않았다.


그게 맞기도 했다.


주인공인 강아지 베일리는 자신의 주인 '이든'에게 사랑을 느끼고


가족이 되었다.


강아지의 삶이었지만, 인간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 모두를 지난다.


영화의 설정이 어색할 수 있지만, 쇠약해진 베일리는 눈을 감고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각각의 환경에서 베일리는 매번 다른 삶을 살지만, 항상 이든을 생각한다.


몸이 몇 번 바뀌고, 잡종으로 태어난 베일리는 마트 앞 간이 판매대에서 


젊은 커플의 집으로 가게 된다.


이 커플은 베일리를 사랑으로 돌보지 않고 마당에 묶어만 놓았다.


마침내, 남자는 베일리를 먼 곳에 버리고 홀연히 떠났다.


여기서 베일리는 "저 집으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고


남자가 자신을 버리기 위해 왔던 길 정반대 방향으로 떠나버린다.




베일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가족인 이든을 찾기 위해 


윤회하고 또 윤회한다.


베일리에게 이든을 만나는 것이 최고이자 유일한 목표였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주인에게


"저 집으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나는 현재의 행복과 주체적인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거대해 보이지만 일률적이고 단편적인 '대의'를 위해서


얼마나 소중한 현재의 가치를 부정했는가.